
9.15. 씨너스 단성사
이태원 살인사건
97년, 대학 새내기였던 나에게 그 해는 뜨거운 해로 기억된다.
정부의 폭력과 탄압, 사회의 많은 현상에 많은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분노는 뜨거웠고, 그 분노로 사람들은 대단히 흥분된 상태였다. 분노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했을지도... 비상식적이 일이 수없이 펼쳐졌으니....
3월 어느 날, 과방있는 건물을 향해 걸어올라가고 있는데, 선배 한 명이 나가와서 얘기한다.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 한 명이 전경에 맞아서 죽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4월 어느날, 게시판에 붙여있는 자보를 본다.
이태원 버거킹에서 한 대학생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미군 자녀에 의해 수차례 칼에 찔려 죽임을 당했다고.(미군 자녀라고 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는다. 미군과 관련되어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날 재미를 위한 살인었다는 자보도 붙는다.
그리고 또 어느날,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는 당혹스러운 글귀를 본다.
혼란스러웠던 97년, 그 해 나는 이 사건을 그렇게 접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 영화 속에 이 사건을 다시 만난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이태원 버거킹에서 조중필이라는 학생의 싸늘한 주검이 발견된다.
그리고 미군으로 부터 피어슨을 범인으로 인도받지만,
검사는 알렉스를 살인죄로, 피어슨을 증거인멸죄로 기소한다.
그러나 알렉스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받고, 피어슨도 증거인멸죄의 죄목에 해당하는 1년 6개월의 형량을 받고 감옥에서 살다 출소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둘다 미국으로 돌아간다.
결국 무참하게 죽은 사람은 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채.
시체는 말이 없다고 했던가. 결국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법은 과연 완벽한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법은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범인은 법이 심판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으로 다 처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도 사람이 만든 것. 결국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그 법 집행을 잘 하느냐에 달려있을 뿐.
그러다보니 허점이 많다.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만든 '무죄추정의 원칙'
결국 그것은 양날의 검이 되어 되돌아온다.
죽은 사람이 있는 분명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현실이 빚어진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법을 잘 집행하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끊임없이 고뇌하는 검사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결국 죄인이 없는 결과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주변의 권력과 선입견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지 않으니,
최선을 향해, 진실을 향해 달려가려고 노력하니 말이다.
법이 불완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 의존해서 사회를 유지하는 건,
그 불완전을 완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있는 그 자체를 직시해보길 권하는 영화
영화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이다.
누가 범인인지를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작된 영화라는 점에서, 이 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잘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요소를 잘 활용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전달하고 보여주기에, 중심점이 확고히 살지 않는다.
검사의 고뇌, 누가 범인일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 가족의 고통, 법의 허구성, 불평등한 한미관계...
영화에는 이것들이 그대로 다 들어난다.
중심점을 분명히했으면 영화적으로는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지 않았을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더욱 부각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울림이 있는 건은, '현실에 대한 직시'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감독도 이것을 보여주고자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굳이 해석하지 않는 영화, 영화는 보여주고,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때에는 영화적 분석이 아니라,
그 소재와 그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이 주는 현실을 느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스스로 재구성해보길 바란다.
우리 사회의 권력 관계에 대해, 불평등한 한미 관계에 대해, 법의 한계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의 무기력에 대해.
분석이 아니라 분노가 생기길 바란다.
참담했다.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영화를 보고 무거운 감정을 수습하기 위해 한참을 걸었다.
이것이 현실임을 알기 더욱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 감정을 아직 내 몸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날 내 옷깃을 스치고 가던 바람의 기운이 아직 생생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영화 리뷰를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는 건,
다양한 이해 관계가 걸린 거대란 권력 구조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한계를 본 탓에 그런 감정이 더 든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도달하고 나니,
다시 생각되는 건 다시, 97년이다.
97년, 사회의 그 뜨거운 열기. 분노의 도가니.
영화와 현실의 교착점에 서서 생각한다.
영화적 분석보다는 현실에 대한 이해를 가지길,
개인의 무기력 느끼기보다 현실에 대한 분노를 가지길
나,
그리고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길.
아, 그리고 리뷰를 빌어,
故 조중필씨의 명복을 빕니다.





덧글
인생무상 2010/05/27 00:28 # 삭제 답글
리뷰 매우 공감합니다. 첨언하자면 배우 장근석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평상심 2010/05/31 22:19 #
글 감사합니다.^^ 본 지 오래되어서 연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장근석이라는 배우, 욕심 많은 배우이구나라고 생각했었던 거 같아요.^^